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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스틱과 퍽, 그리고 관계: 스포츠를 통한 리더십의 재정의

1. 리더십의 전통적 패러다임 붕괴 – 명령이 아닌 공감의 시대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리더십은 명확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명령 체계, 강한 통제, 절대적인 상명하복 구조. 이는 당시의 대규모 공장형 생산 시스템에는 적합했지만, 디지털 태생 세대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는 창의력과 자율성이 핵심 경쟁력이 되면서, 사람들은 리더에게 ‘명령’이 아닌 ‘이해’와 ‘신뢰’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MZ세대를 포함한 새로운 세대는 위계가 아닌 관계 기반의 리더십을 선호합니다. 이들은 더 이상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설득당하고 싶고,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리더는 이들을 억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걸어가 주는 파트너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리더십이 작동합니다.

 

이처럼 변하고 있는 리더십 패러다임 속에서, 아이스하키는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하키는 리더 한 명이 게임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구조를 지닙니다. 링크 위에서 센터가 전략을 주도하더라도, 윙과 디펜스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그 전술은 무력화됩니다. 골리조차도 홀로 골을 지킬 수 없고, 전방의 선수들이 수비 협조를 해야만 실점을 막을 수 있습니다. 즉, 리더십은 하나의 포지션이 아닌 ‘관계와 조화 속에서 작동하는 유기적 기능’이 됩니다. 이처럼 하키는 오늘날 필요한 리더십의 성격을 가장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스포츠입니다.

 

스틱과 퍽, 그리고 관계: 스포츠를 통한 리더십의 재정의

2. 실전 속에서 배우는 상황적 리더십 – 아이스하키의 포지션 구조

하키는 체계적인 포지션 구조를 기반으로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는 끊임없는 유동성과 협력이 요구됩니다. 센터, 윙, 디펜스, 골리의 명확한 포지션 외에도, 게임 흐름에 따라 선수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넘어서 행동해야 합니다. 수비수가 공격에 나서야 할 때도 있고, 포워드가 수비 라인까지 내려와야 할 상황도 자주 발생합니다. 이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지만, 게임의 흐름에 따라 리더십과 책임의 축이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점에서 ‘상황적 리더십’ 개념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은 특정한 성격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환경과 과업에 따라 가장 적합한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는 이론입니다. 하키는 경기 중 이 구조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팀의 주장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 퍽을 컨트롤하는 윙이 상황 판단을 주도할 수 있고, 센터가 공간을 읽고 전체 조율을 맡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포지션이 아니라 현재 누가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하고, 팀 전체를 위해 최선의 움직임을 주도하는가입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는 선수는 자연스럽게 유연한 사고, 공감 능력, 즉흥적 판단력, 집단 중심의 사고를 갖추게 됩니다. 특히 유소년에게 이 경험은 평생 이어질 사회성과 조직 협업력의 기초가 됩니다. 정해진 자리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 팀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고 습관은 진정한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의 출발점입니다.

 

3. 실패와 피드백이 만드는 리더 – 경기 중 리더십의 실시간 진화

많은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은 이론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리더십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체득되는 역량입니다. 아이스하키의 경기 환경은 이런 실전 리더십을 키우기에 최적입니다. 왜냐하면 하키는 순간의 실수, 오판, 판단 지연으로 경기의 판도가 순식간에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오류는 누구든 범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수를 한 뒤 그다음 행동입니다.

 

링크 위의 진짜 리더는 실수한 동료를 질책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빠르게 다음 행동을 지시하거나, 자신이 다시 퍽을 몰아 전환을 시도합니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즉각적인 피드백과 회복의 문화를 만들고, 나아가 팀 전체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이는 곧 ‘심리적 안전감’이 조성된 팀이며, 최근 많은 기업이 가장 중시하는 팀 강화 요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아이스하키는 감정 조절과 신체적 대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극한 환경입니다. 흥분하거나 낙담하면 경기 흐름을 놓치기 쉽고, 그러면 팀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리더는 언제나 차분해야 하며, 동료들을 안정시키는 정서적 기준점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현대 조직에서 요구되는 정서적 지능(EQ)을 기반으로 한 리더십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즉, 하키는 감정 통제·피드백·책임감·복구력 등 현실 조직이 필요로 하는 모든 핵심 역량을 훈련할 수 있는 생생한 무대입니다.

 

4. 팀워크의 리더십 – 모두를 빛나게 하는 능력

21세기 리더십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됩니다. 이는 리더가 구성원을 이끌기보다 조력자로서 지원하고,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리더십 모델입니다. 아이스하키에서는 이러한 력형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실현됩니다. 득점자가 항상 경기의 중심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 패스, 수비의 커버, 라인 체인지의 타이밍이 전체 승부를 좌우합니다.

 

하키에서는 골을 넣은 선수보다, 그 기회를 만든 센터와 어시스트가 더 큰 박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는 성과의 중심이 개인이 아닌 ‘과정과 협업’에 있다는 조직적 철학을 반영합니다. 학교나 회사처럼 개인 성과가 강조되는 시스템에서는 쉽게 놓치기 쉬운 ‘공동의 기여 가치’를 하키는 매 경기마다 되새겨 줍니다.

 

또한 팀 내에서 가장 신뢰받는 선수는, 종종 말없이 헌신하는 수비수나 골리입니다. 이들은 리더십을 언어로 표현하기보다는 행동과 헌신으로 증명합니다. 이는 곧 보이지 않는 리더십, 지속 가능한 리더십의 전형이며, 조직의 중간 관리자나 실무 리더들이 갖춰야 할 리더십 스타일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아이스하키는 이처럼 ‘스타’가 아닌 ‘조력자’가 팀을 성공으로 이끄는 리더십을 직접 체험하게 하며, 조직 전체의 유기적인 성장 구조를 만드는 원리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합니다.